마리 퀴리의 불륜과 아인슈타인의 쉴드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는 폴란드 사람이지만 프랑스 사람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며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프랑스에 정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 시기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으면서도 다른 나라보다 그리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박애하지도 않았고
퀴리 부인은 엄청난 성차별과 사생활 침해에 시달렸다.
그녀가 1903년 남편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때도 여자라는 이유로 수상하지 못할 뻔 했으나
남편 피에르 퀴리가 "시발년들아 여자는 아카데미 가입 못하게 해놓고 아카데미 회원 아니라고 상 안 준다니 뭔 개소리야 뒤질래?"라고 점잖게 항의하여 간신히 공동 수상자가 될 수 있었고 수상 이후에도 "운 좋은 계집이 남편 덕에 호강하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3년 뒤 1906년 남편이 음주운전 마차에 치여 사망하고 과부가 된 퀴리는 남편의 제자이자 5살 연하였던 폴 랑주뱅과 연애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폴 랑주뱅이 이미 아들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
물론 폴 랑주뱅은 처가와 심각한 불화에 시달렸으나 물어뜯을 각만 보던 안티들에겐 중요치 않았다.
결국 1911년 그녀가 두 번째 노벨상을 받게 되자 스웨덴 측에서 "저기 여론이 너무 안 좋은데 혹시 사양하실 생각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봤지만
"노벨상은 제 과학적 업적에 주시는 거지 제 평판에 주시나요? 내 노벨상이나 내놔 좆같은 새끼들아"라고 점잖게 대응했다.
그리고 그 시기 마리는 띠동갑의 천재 과학자와 친해지는데
그게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마리 퀴리와도 같은 축복받은 두뇌의 여성에게 향하는 비난 여론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리의 불륜 스캔들에 대해 알려준 지인에게
"시발년들아 마리 누나가 뇌는 섹시해도 와꾸는 아니야. 유부남인 연하를 꼬셨다고? 마리 누나가? 이 새끼들이 눈이 삐었나"라고 점잖게 그녀를 변호했다.
동생의 쉴드에 마리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점잖게 대응하셨겠지.
* 프랑스의 혐성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이민자에 여자가 잘나가는거 보기가 싫었는지 노벨상 2회 수상자인 그녀는 결국 과학 아카데미에 가입하지 못했다.
의학 아카데미에는 넣어줬지만, 과학 아카데미는 오히려 "여자는 과학 아카데미 가입 불가" 같은 병신 같은 규칙까지 세웠다.
이 병신 같은 규칙은 1962년까지 유지되다 사라졌는데 그뒤 처음으로 받아준 여성 과학자는 마리의 제자였던 마그리트 페레였다.
** 폴 랑주뱅과 처가의 불화는 랑주뱅의 성격이 원인이긴 했으나 장모가 던진 철제의자에 얼굴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출근한 랑주뱅을 스승인 퀴리 부부가 치료하고 위로해줬다는 기록이 있다.
*** 랑주뱅과 엄마의 불륜 스캔들로 마리의 딸인 이렌과 이브도 엄청 시달렸지만 이렌은 폴 랑주뱅을 스승으로 섬겼고 나중엔 스승의 손자와 자기 딸을 결혼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