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당시 어느 수도자가 죽기전에 남긴 기록
14세기에 산 아일랜드 수도자 및 역사가 존 클린(John Clyn, O.F.M, c. 1286 – c. 1349)은 스코틀랜드의 아일랜드 침공과 대기근을 거쳐 흑사병 시기에 당시 종말 그 자체였던 참상을 기록했는데 결국 본인도 흑사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보임.
특히 수도자들도 다 죽어나가면서 마지막으로 후세에 남긴 기록이 인상적이어서 기억되고 있음.
1348년
"9월과 10월에 주교, 고위 성직자, 사제, 수사, 귀족과 그 밖의 사람들, 남녀를 막론하고 아일랜드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지 탓 몰리니스(Teach Molinge, 오늘날의 St Mullins)로 몰려들었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어떤 날에는 수천 명이 모여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부는 신심으로, 그러나 대다수는 당시 매우 유행하던 역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역병은 더블린 근처의 호스(Howth)와 드로그다에서 시작되었다. 이 도시들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주민이 텅 비었고, 더블린에서만 8월부터 크리스마스까지 1만 4천 명이 죽었다."
“그 역병은 마을과 도시, 성채와 읍락에서 사람들을 앗아 갔으며, 그곳에는 거주할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역병은 그토록 전염성이 강하여, 병자나 시신을 만지는 사람은 누구든 곧 감염되어 죽었다.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과 고해성사를 베푸는 사제도 함께 무덤으로 옮겨졌다.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병자를 찾아보거나 죽은 이를 매장하는, 신앙심과 자비심에서 비롯되는 의무조차 감히 수행하려 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종기와 농양, 정강이나 겨드랑이에 생긴 고름집으로 죽었다. 또 어떤 이들은 머리의 극심한 통증으로 정신을 잃은 채 죽었으며, 다른 이들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유례가 없으며, 여러 면에서 기이한 해였다. 그러나—이 관찰은 참으로 자연스럽고도 애처롭지 않은가?—그해는 질병과 죽음이 만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농작물이 충분히 풍성하게 자라 풍요로운 수확을 거둔 해이기도 했다. 그해는 병들고 죽음의 해였지만, 곡식은 넘칠 만큼 풍성하고 수확이 좋았다."
1349년 (마지막 기록)
“사순절 무렵 킬케니(Kilkenny)에는 역병이 맹위를 떨쳤다. 성탄절부터 3월 6일까지 도미니코회 설교 수도사 여덟 명이 역병으로 죽었다. 한 집에서 단 한 사람만 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개 남편과 아내, 자녀와 하인들이 모두 같은 길, 곧 죽음의 길을 함께 걸었다."
"그리고 나, 소형제회(프란치스코회) 소속이자 킬케니 수도원의 존 클린 수사(Friar John Clyn)는, 내 생전에 일어난 주목할 만한 일들, 즉 내가 눈으로 직접 보았거나 신뢰할 만한 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기록하였다.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들이 세월과 함께 사라지거나 후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는 이 수많은 재앙을 목도하고, 마치 온 세상이 악의 권세 아래 놓여 죽은 자들 사이에 거하며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참으로 듣고 확인한 바대로—이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아가 글이 글쓴이와 함께, 일이 일꾼과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그 일을 계속할 양피지를 남겨 둔다. 혹시라도 누군가 살아남는다면, 아담의 후손 가운데 이 역병에서 벗어나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내가 시작한 이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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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필사자가 짧게 덧붙인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저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